설계도면대로 지었는데 하자가 났습니다 — 시공사는 어디까지 책임을 벗나

건설·부동산

설계도면대로 지었는데 하자가 났습니다
시공사는 어디까지 책임을 벗나
박소영 ·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아틀라스
대법원 1996. 5. 14. 선고 95다24975 판결  ·  대법원 2020. 1. 30. 선고 2019다268252 판결  ·  서울중앙지방법원 2026. 2. 25. 선고 2025가단79742 판결

핵심 답변: 수급인이 설계도면의 기재대로 시공했다면 이는 도급인의 지시에 따른 것과 같아서, 그로 인해 하자가 생겨도 하자담보책임을 지지 않습니다(대법원 1996. 5. 14. 선고 95다24975 판결). 최근에는 이 법리가 불법행위의 과실 판단에까지 적용되어 보험사의 구상금 청구가 전부 기각되기도 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6. 2. 25. 선고 2025가단79742 판결). 다만 면책은 두 곳에서 무너집니다. 첫째, 수급인이 도면이 부적당함을 알면서 알리지 않았다면 책임을 면하지 못합니다(민법 제669조 단서, 대법원 2016. 8. 18. 선고 2014다31691 판결). 둘째, 민법 제669조 본문은 애초에 채무불이행책임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대법원 2020. 1. 30. 선고 2019다268252 판결). 담보책임을 면하는 것과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은 다릅니다.

1. 설계도면대로 지었는데 하자가 났습니다. 시공사가 책임져야 하나요?

공사가 끝나고 몇 년이 지난 뒤 하자가 드러납니다. 시공사는 억울합니다. 자재도 공법도 자기가 고른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발주처가 준 설계도서와 시방서에 적힌 대로 시공했을 뿐인데, 그 도면이 낳은 결함의 값을 왜 시공사가 물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항변은 법률상 근거가 있습니다. 민법은 수급인의 하자담보책임을 정하면서(민법 제667조), 바로 다음에 그 책임이 미치지 않는 영역을 따로 두었습니다.

전2조의 규정은 목적물의 하자가 도급인이 제공한 재료의 성질 또는 도급인의 지시에 기인한 때에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수급인이 그 재료 또는 지시의 부적당함을 알고 도급인에게 고지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 민법 제669조

구조가 두 겹입니다. 본문은 면책을 정하고, 단서는 그 면책이 사라지는 경우를 정합니다. 실무에서 다투어지는 것은 거의 언제나 이 두 겹 중 어디에 해당하느냐입니다.

같은 짜임의 규정이 건설산업기본법에도 따로 있습니다. 건설공사 실무에서는 오히려 이쪽이 더 자주 원용됩니다.

수급인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사유로 발생한 하자에 대하여는 제1항에도 불구하고 담보책임이 없다. 다만, 발주자가 제공한 재료 또는 지시가 부적당함을 알고도 그 사실을 발주자에게 알리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발주자가 제공한 재료의 품질이나 규격 등이 기준미달로 인하거나 재료의 성질로 인한 경우
2. 발주자의 지시에 따라 시공한 경우
3. 발주자가 건설공사의 목적물을 관계 법령에 따른 내구연한 또는 설계상의 구조내력을 초과하여 사용한 경우
— 건설산업기본법 제28조 제2항

민법 제669조와 구조가 같습니다. 본문에서 면책을 주고, 단서에서 “알고도 알리지 않았다면” 그 면책을 거둡니다. 두 조문은 결국 같은 두 개의 질문으로 수렴합니다. 발주자의 지시였는가, 그리고 시공자가 그 부적당함을 알고도 침묵했는가.

그런데 조문만 읽으면 한 가지가 비어 있습니다. “도급인의 지시”라는 말이 어디까지를 가리키는지가 적혀 있지 않습니다. 발주처가 공사 중에 구두로 무엇을 하라고 한 것만이 지시인지, 계약 체결 단계에서 건네준 설계도면도 지시인지가 문제됩니다. 이 빈칸을 대법원이 30년 전에 메웠습니다.

2. “도급인의 지시에 따른 것과 같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설계도면에 적힌 대로 시공한 것 자체가 지시에 따른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도면은 도급인이 만들어 건넨 것이므로, 그것을 그대로 구현한 수급인은 자기 판단을 개입시키지 않은 셈이 됩니다.

건축 도급계약의 수급인이 설계도면의 기재대로 시공한 경우, 이는 도급인의 지시에 따른 것과 같아서 수급인이 그 설계도면이 부적당함을 알고 도급인에게 고지하지 아니한 것이 아닌 이상, 그로 인하여 목적물에 하자가 생겼다 하더라도 수급인에게 하자담보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
— 대법원 1996. 5. 14. 선고 95다24975 판결

이 판결이 특히 유용한 이유는, 같은 건물에서 갈린 결론을 한 판결 안에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건의 구조부터 보면, 신축공사를 맡은 수급인(시공사)이 원고가 되어 도급인(건축주)에게 공사대금을 청구했고, 도급인이 하자보수비 상당액으로 맞선 소송이었습니다. 계약을 맺은 두 당사자가 마주 선 자리였고, 하자 항목마다 판단이 달랐습니다.

알루미늄 유리틀은 설계도면에 규격과 제품명이 명시되어 있었고 수급인은 그대로 시공했습니다. 대법원은 이를 도급인의 지시에 따른 것과 같다고 보아 하자담보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유리 자체는 결론이 정반대였습니다. 설계도면상 24㎜ 규격의 복층유리를 쓰도록 되어 있었는데 수급인이 임의로 22㎜ 규격의 일반 제품을 사용했고, 그마저 불량품이어서 유리 사이에 결로가 생기고 물이 차 단열 기능을 하지 못했습니다. 원심은 다른 시공상 하자와 합쳐 26,122,161원의 보수비를 인정했고, 대법원은 이 판단을 정당하다고 보았습니다.

승강기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시방서에는 특정 회사가 제작한 6인승 규격의 승강기를 설치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수급인이 규격은 같지만 가격이 저렴한 다른 회사 제품을 설치했고 그 회사가 공사 후 도산했습니다. 원심은 승강기가 2년 가까이 큰 고장 없이 운행되었고 다른 업체가 부품을 확보하고 있다는 이유로 중요하지 않은 하자라고 보았지만, 대법원은 이를 파기했습니다. 내구연한까지 유지·보수에 필요한 부품이 제대로 공급되리라는 보장이 없게 되었고, 승객의 안전과 직결되는 승강기에서 그러한 하자를 중요하지 않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공사 항목 도면·시방서와의 관계 결론
알루미늄 유리틀 도면 기재대로 시공 하자담보책임 없음
복층유리 규격을 임의로 낮춰 시공 하자 인정
승강기 지정 제조사를 임의로 변경 중요하지 않은 하자로 볼 수 없음(원심 파기)

요컨대 이 법리는 시공사를 넓게 보호하는 규칙이 아닙니다. 도면을 벗어난 순간 보호가 사라지므로, 오히려 도면을 그대로 따랐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쪽만 보호합니다.

3. 이 법리가 불법행위의 과실 판단에도 쓰이나요?

최근 하급심이 그렇게 판단한 사례가 나왔습니다. 하자담보책임에 관한 위 법리를 민법 제750조의 과실 인정 여부에도 가져다 쓴 것입니다.

사안은 이렇습니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주택화재보험·영업배상책임보험을 체결한 보험사가 원고이고, 그 아파트를 신축한 시공사가 피고였습니다. 2024년 4월 새벽, 한 세대 천정 안의 스프링클러 배관에서 누수가 생겨 소화수가 방출되면서 두 세대의 건물과 가재도구가 물에 잠겼고, 아래 세대 거주자는 물기에 미끄러져 상해를 입었습니다.

보험사는 피해 세대에 합계 52,382,149원의 보험금을 지급한 뒤, 상법 제682조의 보험자대위를 근거로 시공사에게 그중 80%에 해당하는 41,905,719원을 구상했습니다. 근거는 건설산업기본법 제44조 제1항과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 그리고 채무불이행이었습니다.

법원은 청구를 전부 기각했습니다. 논리의 출발점이 바로 위 대법원 법리였습니다.

건축 도급계약의 수급인이 설계도면의 기재대로 시공한 경우, 이는 도급인의 지시에 따른 것과 같아서 수급인이 그 설계도면이 부적당함을 알고 도급인에게 고지하지 아니한 것이 아닌 이상, 그로 인하여 목적물에 하자가 생겼다 하더라도 수급인에게 하자담보책임을 지울 수는 없는데(대법원 1996. 5. 14. 선고 95다24975 판결), 이러한 법리는 불법행위에서 채무자의 과실 인정 여부에 관하여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2026. 2. 25. 선고 2025가단79742 판결

이 확장이 실무에서 갖는 의미는 작지 않습니다. 앞서 본 95다24975는 수급인이 도급인에게 공사대금을 청구하고 도급인이 하자보수비로 맞선 사건이었습니다. 계약을 맺은 두 당사자가 마주 앉은 자리였던 셈입니다. 그런데 아파트 하자 분쟁은 그 구도가 아닙니다. 시공사와 입주자 사이에는 계약이 없고, 다투는 사람이 입주자이거나 그 보험사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청구원인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 불법행위입니다. 계약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판결의 취지는 그 영역에서도 “도면대로 했다”는 사실이 과실 판단의 재료가 된다는 것입니다. 계약 당사자 사이의 담보책임 법리가 계약 밖의 다툼으로 건너온 것입니다.

다만 이 판결의 위치는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건은 1심 판결이고, 공개된 자료로는 확정 여부가 확인되지 않습니다. 이 글이 다루는 법리의 뼈대는 어디까지나 위에서 본 대법원 판결들이며, 이 판결은 그 법리가 최근 실제로 적용된 사례로 읽는 것이 정확합니다.

4. 시공할 때는 문제없던 자재가 나중에 문제가 되면 어떻게 되나요?

하자인지 아닌지는 지금의 기준이 아니라 그때의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사고가 난 뒤에 알려진 지식이나 나중에 강화된 기준을 소급해서 들이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대법원은 건축물의 하자가 무엇인지, 무엇을 보고 판단하는지를 이렇게 정리한 바 있습니다.

건축물의 하자라고 함은 일반적으로 완성된 건축물에 공사계약에서 정한 내용과 다른 구조적·기능적 결함이 있거나, 거래관념상 통상 갖추어야 할 품질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아니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하자 여부는 당사자 사이의 계약 내용, 해당 건축물이 설계도대로 건축되었는지 여부, 건축 관련 법령에서 정한 기준에 적합한지 여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되어야 한다.
— 대법원 2008. 6. 26. 선고 2005다56193, 2005다56209(병합) 판결

같은 판결은 층간 바닥충격음 기준이 강화된 사안에서, 강화된 기준을 그 이전에 사업승인을 받은 아파트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고 보면서 판단 자료를 이렇게 제시했습니다.

개정 규정과 아울러 이 사건 아파트 건축 당시의 공동주택들의 건축현황이나 바닥충격음의 정도, 당시의 기술 수준, 개정 규정의 기준설정 경위 등 여러 사정들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 대법원 2008. 6. 26. 선고 2005다56193, 2005다56209(병합) 판결

앞의 스프링클러 사건도 같은 흐름 위에 있습니다. 시공사는 발주처로부터 소방시설공사 설계도서와 시방서를 교부받아 그에 따라 배관 자재로 합성수지배관(CPVC)을 사용해 시공했고, 2017년 7월 소방시설공사업법에 따른 완공검사증명서를 교부받았습니다. 법원은 이 사실관계 위에서 다음과 같이 판단했습니다.

2017년 당시 스프링클러의 배관 자재로 합성수지배관(CPVC)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 당시 건축법령·건설관행에 있어 요구되는 주의의무 사항이었다고 보기 어렵고, 시공사인 피고가 그러한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2026. 2. 25. 선고 2025가단79742 판결

주의할 점은 완공검사나 사용검사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위 판결에서도 완공검사증명서는 당시 기준에 맞게 시공되었다는 여러 정황 중 하나로 쓰였을 뿐, 그것만으로 결론이 난 것은 아닙니다.

5. 도면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알렸어야 합니다. 민법 제669조 단서가 정한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대법원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수급인이 전문가인 이상 도면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경우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도급인의 지시에 따라 건축공사를 하는 수급인이 그 지시가 부적당함을 알면서도 이를 도급인에게 고지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완성된 건물의 하자가 도급인의 지시에 기인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에 대한 하자담보책임을 면할 수 없다.
— 대법원 2016. 8. 18. 선고 2014다31691, 31707 판결

이 사건의 사실관계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공장부지 조성공사였는데 공사계약서에 “보강토 쌓기는 발파석 쌓기로 견적하였음”이라고 적혀 있었고, 수급인은 그 약정대로 비탈면에 전석 쌓기 방식의 석축을 시공했습니다. 그런데 전석 쌓기는 통상 2m 이하 높이에 쓰는 공법으로 토압과 하중을 지지하지 못하고, 3m를 넘으면 콘크리트 옹벽이나 보강토 옹벽을 써야 합니다. 문제된 구간의 시공 높이는 7m와 5.8m였습니다.

대법원은 계약 약정대로 시공한 것이므로 “도급인의 지시에 따른 것과 같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결론은 반대로 냈습니다.

그렇지만 수급인인 원고는 토목 및 건축 공사의 전문가로서 이 사건 공동도급업체들의 요구와 상관없이 비탈면 공사를 위한 석축의 안전성, 견고성, 적합성 등을 판단하여야 할 기본적인 의무가 있고, 설령 이 사건 공동도급업체들이 원고에게 이 사건 공사구간에 전석 쌓기 방식의 석축을 시공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하더라도, 원고는 이를 그대로 수용하여 계약을 체결할 것이 아니라 그 타당성 여부를 검토하여 (…) 전석 쌓기 방식의 석축을 시공하는 것이 부적당하다고 판단되었다면, 피고들에게 알려 이를 바로잡았어야 한다.
— 대법원 2016. 8. 18. 선고 2014다31691, 31707 판결

여기서 “알면서도”의 의미가 넓어집니다. 실제로 알았다는 자백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야의 전문가라면 당연히 알았을 사정이면 족하다는 취지로 읽힙니다. 시공 높이가 7m인 곳에 2m용 공법을 쓰는 것처럼 기술적으로 명백한 경우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다만 같은 판결은 배상 범위에서 균형을 잡았습니다. 석축 시공을 전제로 공사대금이 정해진 이상, 수급인이 고지의무를 진다고 하더라도 그 공사대금을 초과하는 비용까지 들여 재시공할 계약상 의무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나아가 잘못된 공법을 약정하게 된 과정에 도급인 측에도 잘못이 있다면 그 점을 참작해 배상 범위를 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6. 감리인에게 알리고 그 지시를 따랐다면 어떻게 되나요?

고지의무를 다한 것으로 봅니다. 감리인은 건축주를 위해 시공을 확인하고 지도하는 지위에 있으므로, 감리인에게 알린 것은 도급인에게 알린 것과 같이 취급됩니다.

이 점을 판단한 것이 위 2016년 판결이 리딩 케이스로 인용한 1995년 대법원 판결입니다.

도급인의 지시에 따라 건축공사를 하는 수급인은 그 지시가 부적당함을 알면서도 이를 도급인에게 고지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완성된 건물의 하자가 도급인의 지시에 기인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에 대한 담보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이지만, 공사의 감리인은 건축주의 지정과 의뢰에 따라 건축주를 위하여 건축시공자가 하자 없는 건축물을 완성할 수 있도록 자신의 전문지식을 동원한 재량으로 공사가 설계도서대로 시공되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공사시공자를 지도하는 사무를 처리하는 자이므로 수급인이 공사 도중에 발생한 사정을 감리인에게 고하고 그의 지시에 따라 원래의 설계도서대로 공사를 계속한 것이라면 가사 완성된 건물에 설계도서의 결함으로 인한 하자가 발생하였다 하더라도 수급인이 설계도서의 부적당함을 알면서 이를 고지하지 아니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 대법원 1995. 10. 13. 선고 94다31747, 31754 판결

사안은 단순합니다. 공사 도중 지하수가 솟아 나오자 수급인이 이를 감리인에게 알렸고, 감리인이 설계 변경을 할 정도는 아니니 그대로 진행해도 된다고 하여 지하수를 밖으로 빼내는 조치만 취하고 공사를 계속했습니다. 대법원은 이 경우 수급인이 설계도의 잘못을 알았다고 할 수 없으므로 고지할 의무가 발생하지도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실무적으로 이 판결이 주는 함의는 분명합니다. 현장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했을 때 그 사실과 감리의 판단이 문서로 남아 있는지가 나중에 결정적인 차이를 만듭니다. 구두로 오간 협의는 몇 년 뒤 분쟁이 시작되면 재현하기 어렵습니다.

7. 하자담보책임을 면하면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나요?

아닙니다. 여기가 이 주제에서 가장 자주 오해되는 지점입니다. 민법 제669조는 하자담보책임에 관한 조항이고, 채무불이행책임은 별개의 권원으로 따로 살아 있습니다.

대법원은 두 책임의 관계를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위 보수비용은 민법 제667조 제2항에 의한 수급인의 하자담보책임 중 하자보수에 갈음하는 손해배상이고, 액젓 변질로 인한 손해배상은 위 하자담보책임을 넘어서 수급인이 도급계약의 내용에 따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도급인의 신체·재산에 발생한 손해에 대한 배상으로서 양자는 별개의 권원에 의하여 경합적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 대법원 2004. 8. 20. 선고 2001다70337 판결

그리고 2020년에 대법원은 제669조의 적용 범위를 정면으로 판단했습니다.

도급계약에 따라 완성된 목적물에 하자가 있는 경우, 수급인의 하자담보책임과 채무불이행책임은 별개의 권원에 의하여 경합적으로 인정된다. (…) 그러나 이 규정은 수급인의 하자담보책임이 아니라 민법 제390조에 따른 채무불이행책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 대법원 2020. 1. 30. 선고 2019다268252 판결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설계도면대로 시공했다는 사실은 하자담보책임의 영역에서는 조문에 의한 면책 사유가 되지만, 채무불이행책임의 영역에서는 그런 조문상 면책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영역에서 시공사가 벗어나려면 자신에게 귀책사유가 없다는 점을 따로 다투어야 합니다.

덧붙이면, 하자담보책임은 법이 특별히 인정한 무과실책임이어서 과실상계 규정이 그대로 준용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위 2004년 판결은 담보책임이 공평의 원칙에 입각한 것인 이상 하자 발생과 확대에 가공한 도급인의 잘못은 참작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도면을 준 쪽의 잘못이 배상액 산정 단계에서 고려될 여지는 남아 있는 셈입니다.

8. 계약 상대방이 아닌 입주자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나요?

계약을 근거로 한 책임, 즉 채무불이행책임은 지지 않습니다. 계약이 없으면 이행할 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계약이 없다고 해서 시공사가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계약 밖에서 두 갈래 길이 따로 열려 있습니다.

앞의 스프링클러 사건에서 보험사는 불법행위와 채무불이행을 함께 주장했는데, 법원은 후자를 이렇게 배척했습니다.

피고는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로부터 공사를 도급받아 시공하였을 뿐 피해 세대와 직접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한 것이 아니므로, 계약상대방이 아닌 피해 세대에 대하여 채무불이행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2026. 2. 25. 선고 2025가단79742 판결

공공기관이나 시행사가 발주하고 시공사가 지어 분양하는 구조에서는 시공사와 입주자 사이에 계약이 없는 것이 보통입니다. 계약을 근거로 한 청구는 여기서 막힙니다. 그러나 남은 길이 둘 있습니다.

첫째, 집합건물법이 직접 만들어 준 담보책임입니다. 여기서 흔한 오해를 하나 짚어야 합니다. 하자담보책임이 언제나 계약 당사자 사이에서만 문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파트처럼 집합건물이라면 법이 계약과 무관하게 책임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제1조 또는 제1조의2의 건물을 건축하여 분양한 자(이하 “분양자”라 한다)와 분양자와의 계약에 따라 건물을 건축한 자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이하 “시공자“라 한다)는 구분소유자에 대하여 담보책임을 진다. 이 경우 그 담보책임에 관하여는 「민법」 제667조 및 제668조를 준용한다.
—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9조 제1항

다만 이 길에는 두 개의 관문이 있습니다. 하나는 순서입니다. 시공자의 담보책임 중 민법 제667조 제2항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은 분양자에게 회생절차개시 신청, 파산 신청, 해산, 무자력 또는 그에 준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진다고 정해져 있습니다(같은 조 제3항). 분양자가 멀쩡히 존재한다면 시공자에게 곧바로 손해배상을 구하기는 어렵다는 뜻입니다. 다른 하나는 기간입니다. 주요구조부와 지반공사의 하자는 10년, 그 밖의 하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5년 이내의 기간 안에 권리를 행사해야 하고, 공용부분은 사용검사일이나 사용승인일부터 기산합니다(같은 법 제9조의2).

이 두 관문 때문에 실제 사건은 한 단계를 돌아가는 모양이 됩니다. 구분소유자가 시공사에게서 곧바로 손해배상을 받아내기는 어렵고, 분양자가 먼저 배상한 뒤 시공사에게 도급계약상 책임을 묻는 경로로 흘러갑니다. 그리고 “도면대로 했다”는 항변이 힘을 발휘하는 곳이 바로 그 마지막 단계입니다.

최근 판결이 이 흐름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구분소유자들이 분양자와 시공사를 함께 제소했는데, 시공사에 대한 청구는 집합건물법 제9조 제3항의 요건이 인정되지 않아 기각되었고 분양자만 하자보수비를 물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분양자가 시공사를 상대로 도급계약상 하자담보책임을 물었습니다. 시공사는 화장실 창호와 지하주차장 램프 지붕이 발주자가 지시한 준공도면대로 시공된 것이라고 항변했고, 법원은 95다24975를 인용하며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총 하자보수비 464,703,582원에서 그 두 항목 49,340,409원이 공제되어 415,363,173원으로 정해졌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5. 5. 2. 선고 2024나2054189 판결).

둘째, 불법행위입니다. 건설산업기본법 제44조 제1항은 “건설사업자가 고의 또는 과실로 건설공사를 부실하게 시공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정합니다. 무과실책임이 아니고, 부실 시공과 고의·과실을 주장하는 쪽이 증명해야 합니다. 위 판결도 “피고가 고의 또는 과실로 (…) 부실 시공하였음을 증명하여야 하는데” 그 증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앞서 본 “도면대로 했다”는 항변이 힘을 발휘하는 자리가 바로 여기입니다.

보험사가 구상에 나서는 근거는 상법 제682조의 보험자대위입니다. 다만 대위는 피해자가 가지고 있던 권리를 그대로 넘겨받는 것이므로, 피해자가 애초에 시공사에게 청구할 수 없었다면 보험사도 청구할 수 없습니다. 이 사건에서 보험사가 든 청구원인은 불법행위와 채무불이행이었고, 두 갈래가 모두 막히면서 청구가 전부 기각되었습니다.

9. 실무에서 결국 무엇이 승패를 가르나요?

청구원인이 무엇이냐에 따라 “도면대로 했다”는 항변의 힘이 달라집니다. 세 갈래를 나누어 보면 그림이 분명해집니다.

구분 근거 “설계도면대로 시공” 항변 과실 요건 계약관계
하자담보책임
(도급계약)
민법 제667조·제669조
건설산업기본법 제28조
조문상 면책(민법 제669조 본문, 건산법 제28조 제2항 제2호) — 각 단서로 무너짐 불요(무과실책임) 필요
담보책임
(집합건물)
집합건물법 제9조 조문은 민법 제667조·제668조를 준용한다고 정함 불요(무과실책임) 불요 — 구분소유자에게 직접
채무불이행책임 민법 제390조 제669조 본문 적용 안 됨(2019다268252) 필요 필요
불법행위책임 민법 제750조, 건설산업기본법 제44조 제1항 과실 인정 여부의 판단 자료(2025가단79742) 필요(청구자가 증명) 불요

그리고 어느 갈래로 가더라도 결국 같은 세 가지 사실에서 결론이 갈립니다.

첫째, 도면대로 시공했는가. 이것이 증명되지 않으면 나머지 논의가 시작되지도 않습니다. 95다24975에서 유리틀과 유리의 결론이 갈린 지점이 정확히 여기였습니다. 설계도서·시방서 원본과 실제 시공 내역을 대조할 수 있는 자료가 남아 있어야 합니다.

둘째, 도면이 부적당함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가. 2014다31691은 이 요건을 전문가 기준으로 판단했습니다. 기술적으로 명백한 부적합이라면 몰랐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셋째, 알았다면 알렸는가. 그리고 그 사실이 남아 있는가. 94다31747은 감리인에게 알린 것으로 충분하다고 보았지만, 그 판단의 전제는 그런 사실이 인정되었다는 것입니다. 통지 공문, 감리 지시서, 공사일지처럼 시점과 내용이 확인되는 기록이 있어야 이 요건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하자를 판단하는 기준시가 시공 당시라는 점도 함께 기억할 만합니다(2005다56193). 몇 년 뒤 기준이 강화되었다는 사정만으로 과거의 시공이 소급해서 하자가 되지는 않으므로, 시공 당시에 적용되던 법령·기술기준·승인도서를 확보해 두는 것이 실제 다툼에서는 도면 자체만큼 중요합니다.

10. 자주 묻는 질문

Q. 발주처가 준 설계도면대로 시공했는데 하자가 생겼습니다. 책임을 지나요?

하자담보책임은 지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대법원은 건축 도급계약의 수급인이 설계도면의 기재대로 시공한 경우 이는 도급인의 지시에 따른 것과 같아서, 수급인이 그 설계도면이 부적당함을 알고 도급인에게 고지하지 아니한 것이 아닌 이상 하자담보책임을 지울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1996. 5. 14. 선고 95다24975 판결). 민법 제669조 본문이 그 근거이고, 건설산업기본법 제28조 제2항 제2호도 “발주자의 지시에 따라 시공한 경우”를 담보책임이 없는 사유로 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는 하자담보책임에 관한 것이고, 채무불이행책임이나 불법행위책임까지 자동으로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Q. 도면과 다른 제품을 썼지만 규격이 같고 실제로 잘 작동합니다. 하자인가요?

하자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시방서에 특정 회사가 제작한 승강기를 설치하도록 되어 있는데 수급인이 규격은 같고 가격이 저렴한 다른 회사 제품을 설치했고 그 회사가 도산한 사안에서, 약 2년간 큰 고장이 없었고 다른 업체가 부품을 확보하고 있더라도 내구연한까지 부품 공급이 보장되지 않게 되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승객의 안전과 직결되는 승강기에서 그러한 하자를 중요하지 않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원심을 파기했습니다(대법원 1996. 5. 14. 선고 95다24975 판결).

Q. 계약서에 적힌 공법대로 했는데도 책임을 지는 경우가 있나요?

있습니다. 대법원은 계약서에 전석 쌓기 방식이 명시되어 그대로 시공한 사안에서, 이를 도급인의 지시에 따른 것과 같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하면서도 수급인은 토목 및 건축 공사의 전문가로서 석축의 안전성·견고성·적합성을 판단하여야 할 기본적인 의무가 있고 부적당하다고 판단되었다면 도급인에게 알려 바로잡았어야 한다고 보아 하자담보책임을 인정했습니다(대법원 2016. 8. 18. 선고 2014다31691, 31707 판결). 시공 높이가 7m와 5.8m인 구간에 통상 2m 이하에 쓰는 공법을 적용한 사안이었습니다.

Q. 도면에 문제가 있어 보여 감리인에게 알렸고 그대로 진행하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고지의무를 다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감리인이 건축주의 지정과 의뢰에 따라 건축주를 위하여 공사가 설계도서대로 시공되는지를 확인하고 시공자를 지도하는 사무를 처리하는 자이므로, 수급인이 공사 도중 발생한 사정을 감리인에게 고하고 그 지시에 따라 원래의 설계도서대로 공사를 계속했다면 설계도서의 부적당함을 알면서 고지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1995. 10. 13. 선고 94다31747, 31754 판결). 다만 그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 있어야 주장할 수 있습니다.

Q. 하자담보책임을 면하면 손해배상도 전부 면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도급계약에 따라 완성된 목적물에 하자가 있는 경우 수급인의 하자담보책임과 채무불이행책임은 별개의 권원에 의하여 경합적으로 인정된다고 하면서, 민법 제669조 본문의 규정은 하자담보책임에 관한 것일 뿐 민법 제390조에 따른 채무불이행책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20. 1. 30. 선고 2019다268252 판결). 따라서 채무불이행책임에서는 도면대로 했다는 사정만으로 조문상 면책을 주장할 수 없고, 귀책사유가 없다는 점을 따로 다투어야 합니다.

Q. 시공 당시에는 허용되던 자재가 지금 기준으로는 부적합합니다. 하자인가요?

원칙적으로 시공 당시의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대법원은 하자 여부가 당사자 사이의 계약 내용, 해당 건축물이 설계도대로 건축되었는지 여부, 건축 관련 법령에서 정한 기준에 적합한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기준이 강화된 사안에서 건축 당시의 건축현황과 당시의 기술 수준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08. 6. 26. 선고 2005다56193, 2005다56209(병합) 판결). 하급심에서도 2017년 당시 스프링클러 배관에 CPVC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당시 요구되던 주의의무는 아니었다고 판단한 사례가 있습니다.

Q. 아파트 누수 사고로 보험사가 시공사에 구상금을 청구했습니다. 무엇을 증명해야 하나요?

청구하는 보험사가 시공사의 고의 또는 과실과 부실 시공을 증명해야 합니다. 건설산업기본법 제44조 제1항은 건설사업자가 고의 또는 과실로 건설공사를 부실하게 시공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 배상책임을 진다고 정하고 있어 무과실책임이 아닙니다. 실제로 보험금 52,382,149원을 지급한 보험사가 그중 80%인 41,905,719원을 구상한 사건에서, 법원은 시공상 하자나 고의·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아 청구를 전부 기각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6. 2. 25. 선고 2025가단79742 판결).

Q. 시공사와 계약을 맺은 적이 없는 입주자도 시공사에 청구할 수 있나요?

계약을 근거로 한 채무불이행책임은 물을 수 없습니다. 법원은 시공사가 사업시행자로부터 공사를 도급받아 시공하였을 뿐 피해 세대와 직접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한 것이 아니므로 계약상대방이 아닌 피해 세대에 대하여 채무불이행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6. 2. 25. 선고 2025가단79742 판결). 다만 계약이 없어도 두 갈래가 남습니다. 하나는 집합건물법 제9조 제1항으로, 분양자와 시공자는 구분소유자에 대하여 담보책임을 집니다. 다만 시공자의 손해배상책임은 분양자에게 회생절차개시 신청·파산 신청·해산·무자력 등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지고(같은 조 제3항), 권리행사 기간도 정해져 있습니다(같은 법 제9조의2). 다른 하나는 불법행위인데, 계약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는 대신 고의·과실과 부실 시공을 청구하는 쪽이 증명해야 합니다.

이 글은 공개된 대법원 판결과 하급심 판결, 그리고 현행 법령을 토대로 일반적인 법리를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인용한 하급심 두 건(서울중앙지방법원 2026. 2. 25. 선고 2025가단79742 판결, 서울고등법원 2025. 5. 2. 선고 2024나2054189 판결)은 공개된 자료로 확정 여부가 확인되지 않습니다. 개별 사건의 결론은 설계도서와 시방서의 구체적 기재, 시공 당시 적용되던 법령과 기술기준, 감리 과정의 기록, 청구원인이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박소영 대표변호사 — 법무법인 아틀라스

박소영 | 대표변호사
가사, 상속, 건설·부동산 분쟁 전문 변호사
사법연수원 33기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법무법인 아틀라스 | 인천 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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