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후 촉탁직 재고용 거절과 부당해고
어디부터 부당해고인가
목차
1. 정년이 되면 회사가 재고용 여부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나요?
원칙은 그렇습니다.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와의 근로관계를 연장할지는 사용자의 권한이고, 근로자에게 정년 연장을 요구할 권리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이 원칙을 오래전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취업규칙 등에 명시된 정년에 도달하여 당연퇴직하게 된 근로자에 대하여 사용자가 그 정년을 연장하는 등의 방법으로 근로관계를 계속 유지할 것인지 여부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용자의 권한에 속하는 것으로서, 해당 근로자에게 정년연장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할 수 없고 … 단지 정년연장을 허용하지 아니하는 것이 해당 근로자에게 가혹하다든가 혹은 다른 근로자의 경우에 비추어 형평에 어긋난다는 사정만으로 그 정당성이 없는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 대법원 2008. 2. 29. 선고 2007다85997 판결
같은 판결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년으로 인한 퇴직처리의 성격도 명확히 했습니다. 정년은 근로관계의 자동소멸사유이므로 그 사유가 발생하면 근로관계는 당연히 종료하고, 회사의 퇴직처리는 “관념의 통지”에 불과할 뿐 근로자의 신분을 상실시키는 해고처분과 같은 새로운 형성적 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법령도 회사에 재고용을 강제하지 않습니다.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은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도록 하고(제19조 제1항), 60세 미만으로 정한 경우 60세로 정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합니다(같은 조 제2항). 그리고 정년퇴직자의 재고용에 관해서는 이렇게만 정하고 있습니다.
사업주는 정년에 도달한 사람이 그 사업장에 다시 취업하기를 희망할 때 그 직무수행 능력에 맞는 직종에 재고용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1항
“노력하여야 한다”는 노력의무입니다.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곧바로 재고용 의무가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재고용을 거절당한 정년퇴직자는 다툴 방법이 없는 것일까요. 이 공백을 대법원이 기대권이라는 법리로 메웠습니다.
2. 그런데 왜 ‘재고용 기대권’이라는 말이 나오나요?
규정이 없어도 관행이 규정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오랫동안 정년퇴직자를 예외 없이 다시 채용해 왔다면, 근로자로서는 자기도 그렇게 되리라 믿을 만한 근거가 생깁니다. 대법원은 이 믿음을 보호되는 지위로 승격시켰습니다.
이 법리를 처음 정면으로 제시한 것은 2023년 6월의 판결이었습니다.
근로계약,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에서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가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기간제 근로자로 재고용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거나, 그러한 규정이 없더라도 재고용을 실시하게 된 경위 및 그 실시기간, 해당 직종 또는 직무 분야에서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 중 재고용된 사람의 비율, 재고용이 거절된 근로자가 있는 경우 그 사유 등의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볼 때, 사업장에 그에 준하는 정도의 재고용 관행이 확립되어 있다고 인정되는 등 …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근로자는 그에 따라 정년 후 재고용되리라는 기대권을 가진다.
— 대법원 2023. 6. 1. 선고 2018다275925 판결
이 사건의 회사는 포스코에서 분사되어 제철소의 방호·보안 업무를 맡던 곳이었습니다. 취업규칙에도 근로계약에도 단체협약에도 재고용에 관한 규정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기대권을 인정했습니다. 재고용 제도가 2012년 9월 도입된 이래 “정년퇴직자가 재고용을 원하는 경우에는 예외 없이 기간제 근로자로 재고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달 말, 대법원은 이 법리를 노동위원회 구제신청 사건으로 옮기면서 효과를 덧붙였습니다.
정년퇴직하게 된 근로자에게 기간제근로자로의 재고용에 대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 사용자가 기간제근로자로의 재고용을 합리적 이유 없이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근로자에게 효력이 없다.
— 대법원 2023. 6. 29. 선고 2018두62492 판결
그리고 같은 해 11월에는 적용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처음부터 기간제로 입사해 일하다 정년으로 퇴직하게 된 요양보호사 사건에서, 대법원은 이 법리가 “기간제 근로자가 정년을 이유로 퇴직하게 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23. 11. 2. 선고 2023두41727 판결).
정리하면 구조는 이렇습니다.
| 단계 | 내용 | 근거 |
|---|---|---|
| 원칙 | 정년 후 재고용 여부는 사용자의 권한 | 2007다85997 |
| 예외 | 규정 또는 그에 준하는 관행이 있으면 재고용 기대권 발생 | 2018다275925 |
| 효과 | 합리적 이유 없는 재고용 거절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무효 | 2018두62492 |
| 확장 | 기간제 근로자가 정년으로 퇴직하는 경우에도 적용 | 2023두41727 |
3. 같은 “할 수 있다” 규정인데 왜 결론이 갈렸나요?
최근 판결들을 나란히 놓으면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납니다. 취업규칙의 문언은 사실상 같은데 결론은 정반대였습니다. 오히려 기대권이 인정된 회사 쪽 규정이 더 빈약했습니다.
| 사건 | 업종 | 취업규칙·단체협약 문언 | 결론 |
|---|---|---|---|
| 2018두62492 (2023. 6. 29.) |
시내버스 | 업무상 필요가 있는 경우 촉탁으로 재고용 할 수 있되, 건강상태·근로태도·성적 및 성격·업무의 필요성 등 기준에 따라 적부를 심사한 후 결정 | 기대권 부정 |
| 2023두41727 (2023. 11. 2.) |
노인요양시설 | 업무의 필요에 의하여 정년퇴직자를 계약직(촉탁직)으로 재고용 할 수 있다 — 심사 기준·절차 없음 | 기대권 부정 |
| 2025두32673 (2026. 8. 12.) |
시내버스 | 업무상 특별히 필요하다고 인정된 자는 퇴직 후 촉탁계약직으로 고용할 수 있다 — 심사 기준·절차 없음 | 기대권 인정 |
2018두62492의 취업규칙은 심사 기준까지 열거하고 있었지만 대법원은 기대권을 부정했고, 2025두32673의 취업규칙은 심사 기준도 절차도 없이 “고용할 수 있다” 한 줄뿐이었는데 대법원은 기대권을 인정했습니다. 규정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 차이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2025두32673의 원심은 규정 중심으로 판단했습니다. 취업규칙 제83조 제2항은 회사에 재고용할 수 있는 재량을 부여한 것으로 볼 수 있을 뿐 재고용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 아니고, 재고용 여부를 심사하는 기준이나 절차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대법원은 같은 조항을 다르게 읽었습니다. 제2항이 정년퇴직자의 촉탁직 재고용에 관한 근거를 마련해두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재량규정이라도 근거는 근거이고, 나머지는 관행이 채운다는 판단입니다.
결국 결론을 가른 것은 규정이 아니라 그 회사가 실제로 어떻게 해 왔는가였습니다. 그리고 이때 그 관행을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느냐가 다음 쟁점이 됩니다.
4. 재고용 비율은 무엇을 분모로 세나요?
이번 판결의 실질적인 핵심입니다. 원심과 대법원은 같은 회사의 같은 기간을 보면서 다른 숫자를 세었습니다. 분모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원심이 든 숫자는 이렇습니다.
2021년과 2022년에 정년 도래한 원고 소속 버스기사 38명 중 약 47%에 불과한 18명만이 촉탁직 근로자로 채용되었다.
— 원심(대전고등법원 2025. 1. 9. 선고 2024누11738 판결)의 판단, 2025두32673에서 인용
절반에 못 미치는 비율입니다. 이 숫자만 보면 “예외 없이 재고용해 왔다”는 관행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대법원이 같은 기간을 다시 세었을 때 결과는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2021년과 2022년에 정년퇴직하고 촉탁직으로의 재고용을 신청한 원고 소속 버스기사들 중에서 참가인들과 소외인을 제외하고는 예외 없이 재고용되었으며, 그 이전에도 원고가 정년퇴직자의 재고용 신청을 거부한 사례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 대법원 2026. 8. 12. 선고 2025두32673 판결
분모가 정년도달자 전체(38명)에서 재고용을 신청한 사람으로 바뀌자, 47%였던 비율이 사실상 100%가 되었습니다.
이 접근은 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리딩 케이스인 2018다275925가 이미 “정년퇴직자가 재고용을 원하는 경우에는 예외 없이”라는 표현을 썼고, 회사가 재고용 거부 사례라고 주장한 것들이 실은 재고용 후 갱신을 거절한 사례임을 지적하며 재고용 거절과 갱신 거절을 구별했습니다.
기대권이 부정된 두 판결을 다시 보면 같은 관점이 반대 방향에서 작동합니다. 2018두62492에서 대법원은 정년 도달자 23명 중 최소 8명이 촉탁직 계약을 체결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이들이 촉탁직으로의 재고용을 원하였는데도 재고용되지 못한 것인지, 그러하다면 재고용 거절 사유가 무엇이었는지는 기록상 분명하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2023두41727에서도 재고용되지 않은 근로자에 대해 “촉탁직으로의 재고용을 원하였는데도 재고용되지 못한 것인지 … 기록상 분명하지 않다”는 같은 문장이 등장합니다.
즉 희망 여부가 확인되지 않으면 그 숫자는 어느 쪽 근거도 되지 못합니다. 세 판결을 나란히 놓으면 이렇습니다.
| 사건 | 재고용 실적 | 희망 여부 확인 | 결론 |
|---|---|---|---|
| 2018두62492 | 정년도달 23명 중 8명 이상 미체결 | 불분명 | 관행 부정 |
| 2023두41727 | 정년 무렵 근무 5명 중 2명 미재고용 | 불분명 | 관행 부정 |
| 2025두32673 | 신청자 중 이 사건 3명 외 전원 재고용 | 신청 기준으로 확인 | 관행 인정 |
이 논점이 실무에서 얼마나 민감한지는 하급심에서도 확인됩니다. 광주지방법원은 시내버스 회사가 “2021년 및 2022년 정년이 도래한 근로자들 중 47%를 촉탁직 근로자로 재고용”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회사가 정년 도래일에 곧바로 재고용하지 않고 공고 등 별도의 채용절차를 거쳐 응시자를 대상으로 고용해 왔다는 점을 들어 기대권을 부정했습니다(광주지방법원 2025. 5. 29. 선고 2024가합54893 판결). 같은 47%라는 수치가 판단하는 법원에 따라 정반대로 평가된 셈입니다.
그렇다면 대법원은 왜 “별도의 채용절차”라는 사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다음 항목이 그 답입니다.
5. 정년 직후가 아니라 두 달 뒤에 재고용했다면 기대권이 깨지나요?
깨지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절차가 형식에 불과했다면 그 절차가 만들어낸 시간 공백도 기대권을 부정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원심이 든 사정은 구체적이었습니다. 재고용된 기사들은 ‘단기간 근로자 승무사원 모집 공고’에 응시해 이력서를 제출하는 절차를 거쳤고, 정년 도래 직후가 아니라 정년일 기준 23일부터 112일 이후에 채용되었습니다. 반면 이 사건 근로자들은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정년일 직후 곧바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습니다.
대법원은 그 절차의 실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원고의 촉탁직 근로자 채용에는 원고 회사에서 정년퇴직한 버스기사들과 그 외의 버스기사들이 절차의 구분 없이 채용 신청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원고는 원고 회사에서 정년퇴직한 버스기사들을 전원 채용하고 그 외의 버스기사들은 심사를 거쳐 일부만 채용하였다. 여기에다가 원고 회사에서 정년퇴직한 버스기사들 중 일부는 이력서를 새로 제출하지도 않았던 점 등을 더하여 보면, 원고가 정년퇴직자를 촉탁직으로 재고용할 때 형식적인 절차를 거쳤을 뿐 특별한 자격을 요구했다고 보기 어렵다.
— 대법원 2026. 8. 12. 선고 2025두32673 판결
같은 공고에 지원했는데 정년퇴직자는 전원 통과하고 외부 기사만 심사를 받았다면, 그것은 정년퇴직자에게는 심사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이력서를 내지 않고도 채용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절차가 형식이라고 보고 나면 시간 공백에 대한 평가도 자연히 따라옵니다.
재고용을 신청한 원고 소속 버스기사들이 정년 도달일부터 평균 70일 정도 지난 후에야 촉탁직으로 재고용되기는 하였다. 그러나 원고가 정년퇴직자들을 정년 직후에 단절 없이 재고용한 것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별도의 지원 절차를 거쳐 다시 채용하였음을 고려하면, 위와 같은 시간적 간격을 이유로 촉탁직 근로자로의 재고용에 대한 기대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 대법원 2026. 8. 12. 선고 2025두32673 판결
여기에 결정적인 사정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회사 자신이 다른 사건에서 한 진술입니다. 같은 회사에서 정년퇴직한 다른 기사(소외인)가 전남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을 때, 회사는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촉탁직 채용에 관한 매뉴얼과 신청서 양식도 없다. 촉탁직 근무를 원할 경우 찾아오거나 문의하면 필요한 이력서, 가족관계증명서 등 구비서류를 알려주었다. / 소외인의 정년 도달 후 촉탁직 재고용에 대한 기대권은 인정한다.
— 2025두32673에서 인용된 회사의 전남지방노동위원회 진술
전남지방노동위원회는 2022년 8월 30일 그 재고용 거부를 부당해고로 인정했고, 회사는 그 판정에 따라 소외인을 2022년 11월 1일 촉탁직으로 채용했습니다. 다른 근로자 사건에서의 대응이 그대로 돌아온 것입니다.
6. 기대권이 인정되면 무조건 부당해고인가요?
아닙니다. 관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법리 자체가 “합리적 이유 없이 거절하는 것”이 무효라고 정하고 있으므로, 거절에 합리적 이유가 있으면 결론은 달라집니다.
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시내버스 회사에 관한 하급심 사건입니다. 서울행정법원은 다음 사정들을 들어 기대권을 인정했습니다.
- 단체협약이 “정년으로 퇴직한 자를 대상으로 하는 촉탁직 제도는 모든 회사에서 전면적으로 실시하되, 정년퇴직자 개개인의 촉탁직 근로계약 여부에 대하여는 회사에서 자율적으로 실시한다”고 정해 재고용의 가능성을 예정하고 있었던 점
- 회사가 2016년 1월 1일 이후 촉탁직 재고용을 희망하는 근로자 27명 중 22명을 재고용한 점
- 근로자가 정년에 도달할 무렵 회사가 실제로 재고용 여부를 심사한 점
- 회사가 구제신청 단계에서 “촉탁직 재고용의 기회는 정년퇴직한 모든 근로자에게 부여된다”고 진술한 점
여기까지는 2025두32673과 구조가 거의 같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근로자 패소였습니다. 법원은 재고용 거절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근거는 7건의 사고이력이었습니다. 2002년 인사사고(피해자 전치 3주 1명, 전치 2주 3명), 2006년 불법유턴으로 인한 인사사고(피해자 전치 8주 1명)로 회사가 합의금 600만 원을 지출하고 경고장을 발부한 사실 등이 인정되었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22. 10. 13. 선고 2021구합81448 판결).
이 판결은 확정되었습니다. 항소심은 재고용 기대권과 거절의 합리적 이유에 관한 판단을 제1심 이유 그대로 인용하면서 항소를 기각했고(서울고등법원 2023. 8. 17. 선고 2022누66738 판결), 상고심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그대로 확정되었습니다(대법원 2023. 12. 7. 선고 2023두52130 판결). 기대권을 인정하면서도 거절을 정당하다고 본 판단이 대법원에서까지 유지된 사례인 셈입니다.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갱신거절 사건에서 확립된 것을 그대로 씁니다.
사용자의 사업 목적과 성격, 사업장 여건, 근로계약 체결 경위, 근로계약 갱신 제도의 실제 운용 실태, 해당 근로자의 지위와 담당 직무의 내용 및 업무수행 적격성, 근로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는지 등 근로관계를 둘러싼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갱신거절의 사유와 절차가 사회통념에 비추어 볼 때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공정한지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정에 관한 증명책임은 사용자가 부담한다.
— 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9두45647 판결
마지막 문장이 중요합니다. 거절이 정당했다는 점은 회사가 증명해야 합니다. 이 배분이 다음 항목의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7. 회사가 아무 답을 하지 않은 것은 왜 문제가 되었나요?
회사가 거절 사유를 만들 기회를 스스로 버렸기 때문입니다. 증명책임이 회사에 있는데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나중에 내세우는 사유는 사후적으로 지어낸 것으로 읽힐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관계는 단순합니다. 2022년 2월 4일, 노동조합은 회사에 공문을 보내 정년 연장을 요청하고, 연장을 거부할 경우 계약직으로 근무를 희망한다는 뜻을 밝히며, 재계약을 거부할 경우 그 사유를 서면으로 통지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회사는 여기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고, 각 정년 도달일에 근로관계를 종료했습니다.
대법원의 평가는 이렇습니다.
이에 대하여 원고는 채용 공고 절차가 예정되어 있다거나 이력서 제출 등이 필요하다는 안내를 하지 않았고, 아무런 회신 없이 정년 도달을 이유로 참가인들과의 근로관계를 종료하였다. 이를 고려하면 참가인들이 채용 절차에 응시하지 않았다는 점 등이 원고의 재고용 거절사유였다고 보이지는 않고,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고용거절의 합리성을 인정할 수 없다.
— 대법원 2026. 8. 12. 선고 2025두32673 판결
두 겹으로 배척한 점에 주목할 만합니다. 첫째, 절차 미응시는 실제 거절 사유가 아니었다. 둘째, 설령 그것이 사유였더라도 안내조차 하지 않은 회사가 그 미응시를 근거로 삼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이어서 대법원은 심사의 부재와 취급의 불균형도 지적했습니다. 회사가 재고용 기준의 충족 여부나 타당성을 심사하였다는 사정은 찾아볼 수 없고, 다른 정년퇴직자들의 재고용 신청은 예외 없이 받아주면서 이 사건 근로자들의 요청만 거절해야 할 특별한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지점을 하나 짚어 둡니다. 무응답 자체가 곧바로 위법한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기간제 근로계약이 종료된 후 사용자가 갱신 거절을 통보하는 경우에는 해고사유의 서면통지를 정한 근로기준법 제27조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기간제 근로계약은 기간이 만료됨으로써 당연히 종료하는 것이므로 갱신 거절의 존부 및 시기와 사유를 명확하게 하여야 할 필요성이 해고의 경우에 견주어 크지 않고 … 기간제 근로계약이 종료된 후 사용자가 갱신 거절의 통보를 하는 경우에는 근로기준법 제27조가 적용되지 않는다.
— 대법원 2021. 10. 28. 선고 2021두45114 판결
즉 서면통지 의무 위반이라는 독립된 위법이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거절의 합리적 이유를 판단하는 단계에서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증명책임이 회사에 있는 이상,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은 쪽이 불리해집니다. 법적 의무가 없는 일이 승패를 가르는 사실이 되는 것입니다.
8. 단체협약이 실효되었는데도 기대권이 남나요?
남습니다. 기대권의 뿌리가 단체협약이 아니라 신뢰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원심은 이 점에서도 회사 편에 섰습니다. 노동조합 공문의 구체적 내용이 ‘정년 연장 요청’이고, 이는 “정년에 도달한 자에 대해서는 노사합의에 의하여 촉탁직으로 근로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고 정한 2017년 단체협약에 근거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단체협약이 2021년 5월 19일 실효되었으므로 이미 실효된 단체협약을 근거로 한 요청에 응할 의무가 없다고 본 것입니다.
대법원은 두 단계로 이를 배척했습니다.
이 사건 노조가 2017년 단체협약만을 근거로 하여 원고에게 참가인들의 촉탁직 재고용을 요청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이 사건 공문에 그 근거가 2017년 단체협약으로 명시되지도 않았다. 정년 도달 후 촉탁직으로 재고용되리라는 참가인들의 기대권은 원고와의 신뢰관계에 기초한 것이므로, 2017년 단체협약이 실효되었다는 사유만으로 원고가 참가인들의 촉탁직 재고용 요청에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은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 대법원 2026. 8. 12. 선고 2025두32673 판결
사실인정 차원에서는 공문에 단체협약이 근거로 적혀 있지도 않았다는 점을, 법리 차원에서는 기대권의 근거가 단체협약이 아니라 신뢰관계라는 점을 든 것입니다. 협약이 사라져도 그동안 쌓인 관행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만 반대 방향의 사례도 있습니다. 앞서 본 광주지방법원 판결에서는 2017년 단체협약에 있던 “정년 도래자를 우선 촉탁 고용하고 그 규모는 25명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조항이 2020년과 2022년 단체협약에서 삭제된 사정이 기대권을 부정하는 근거 중 하나로 쓰였습니다(광주지방법원 2025. 5. 29. 선고 2024가합54893 판결).
모순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차이는 협약이 사라진 뒤 관행이 남아 있었는가입니다. 관행이 계속되었다면 협약의 실효는 무의미하고, 협약이 사라지면서 운영도 공개채용 방식으로 바뀌었다면 신뢰의 근거 자체가 없어집니다. 협약 조항의 존폐가 아니라 그 이후의 실제 운영이 기준입니다.
9. 실무에서 결국 무엇이 승패를 가르나요?
두 개의 관문이 있고, 각 관문에서 보는 것이 다릅니다.
| 관문 | 쟁점 | 판단 자료 | 증명 부담 |
|---|---|---|---|
| 1 | 재고용 기대권이 있는가 | 규정의 존부, 재고용 실시 경위·기간, 신청자 대비 재고용 비율, 거절 사유 | 기대권을 주장하는 근로자 |
| 2 | 거절에 합리적 이유가 있는가 | 사업장 여건, 담당 직무, 업무수행 적격성, 근로자의 귀책사유, 거절 사유와 절차의 객관성·공정성 | 사용자(2019두45647) |
그리고 어느 관문에서도 반복해서 등장하는 사실이 세 가지입니다.
첫째, 재고용을 신청한 사람 중 몇 명이 재고용되었는가. 정년도달자 전체를 분모로 세면 47%였던 비율이, 신청자를 분모로 세자 사실상 전원이 되었습니다(2025두32673). 반대로 재고용되지 않은 사람들이 애초에 희망했는지가 확인되지 않으면 그 숫자는 관행을 부정하는 근거도 되지 못합니다(2018두62492, 2023두41727). 정년퇴직자의 재고용 희망 의사를 확인하고 그 기록을 남기는 절차가 있는지가 여기서 갈립니다.
둘째, 심사가 실질이었는가 형식이었는가. 공고를 내고 이력서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대법원은 정년퇴직자는 전원 채용하고 외부 지원자만 심사한 점, 이력서를 내지 않고도 채용된 사람이 있었던 점을 들어 절차를 형식으로 보았습니다. 심사가 실질이라고 주장하려면 정년퇴직자에게도 실제로 적용된 기준과 그 적용 결과가 남아 있어야 합니다.
셋째, 요청에 대해 무엇을 회신했는가. 이번 사건의 회사는 노동조합의 서면 요청에 아무 답을 하지 않았고, 그 침묵이 거절 사유의 진정성 자체를 의심받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서면통지 의무가 없다는 것(2021두45114)과 회신 기록이 없어도 불리하지 않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덧붙여 기억할 것은, 정년 후 촉탁직으로 일단 채용된 뒤의 문제는 별개의 법리라는 점입니다. 2018두62492에서 두 근로자의 결론이 갈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직 채용되지 않은 근로자는 재고용 기대권을, 촉탁직으로 근무하다 기간만료 통보를 받은 근로자는 갱신기대권을 주장했고, 후자만 받아들여졌습니다. 갱신기대권 단계에서는 연령에 따른 업무수행 능력·작업능률의 저하 정도와 위험성 증대 정도, 해당 사업장에서 정년이 지난 고령자가 근무하는 실태와 계약이 갱신된 사례까지 추가로 고려됩니다.
10. 자주 묻는 질문
Q. 정년이 되면 회사가 반드시 촉탁직으로 다시 채용해야 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근로계약·취업규칙·단체협약 등에 명시된 정년에 도달하여 당연퇴직하게 된 근로자와의 근로관계를 정년 연장 등의 방법으로 계속 유지할지는 원칙적으로 사용자의 권한에 속하고, 해당 근로자에게 정년 연장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08. 2. 29. 선고 2007다85997 판결).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1항도 정년퇴직자를 재고용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노력의무를 정하고 있을 뿐 재고용을 강제하지 않습니다.
Q. 취업규칙에 재고용할 수 있다고만 되어 있으면 기대권은 없는 건가요?
규정만으로 결론이 정해지지는 않습니다. 대법원은 재고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규정이 없더라도 재고용을 실시하게 된 경위 및 실시기간, 해당 직종에서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 중 재고용된 사람의 비율, 재고용이 거절된 근로자가 있는 경우 그 사유 등을 종합해 재고용 관행이 확립되어 있다고 인정되면 기대권을 가진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23. 6. 1. 선고 2018다275925 판결). 실제로 취업규칙에 업무상 특별히 필요하다고 인정된 자는 촉탁계약직으로 고용할 수 있다는 재량 규정만 두고 심사 기준이나 절차조차 없던 사안에서도 기대권이 인정된 사례가 있습니다(대법원 2026. 8. 12. 선고 2025두32673 판결).
Q. 정년퇴직자 중 절반 정도만 재고용되었다면 관행이 있다고 볼 수 있나요?
무엇을 분모로 세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집니다. 2025두32673 사건에서 원심은 2021년과 2022년에 정년 도래한 버스기사 38명 중 약 47%인 18명만 채용되었다는 이유로 기대권을 부정했지만, 대법원은 정년퇴직하고 촉탁직으로의 재고용을 신청한 기사들 중에서는 참가인들과 소외인을 제외하고 예외 없이 재고용되었다고 보아 원심을 파기했습니다. 리딩 케이스인 2018다275925도 정년퇴직자가 재고용을 원하는 경우에는 예외 없이 재고용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재고용을 원한 사람을 기준으로 판단했습니다.
Q. 정년 직후가 아니라 두세 달 뒤에 재고용하는 회사인데 기대권이 인정될까요?
시간적 간격만으로 기대권이 부정되지는 않습니다. 2025두32673 사건에서 재고용을 신청한 기사들은 정년 도달일부터 평균 70일 정도 지난 뒤에 촉탁직으로 재고용되었고, 원심은 정년일 기준 23일부터 112일 이후에 채용되었다는 점을 기대권 부정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회사가 정년퇴직자를 단절 없이 재고용한 것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별도의 지원 절차를 거쳐 다시 채용했음을 고려하면 그러한 시간적 간격을 이유로 기대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Q. 재고용 기대권이 인정되면 곧바로 부당해고가 되나요?
아닙니다. 관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 사용자가 합리적 이유 없이 재고용을 거절하는 것이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효력이 없는 것이므로(대법원 2023. 6. 29. 선고 2018두62492 판결), 거절에 합리적 이유가 있으면 결론이 달라집니다. 실제로 시내버스 회사에서 재고용 희망자 27명 중 22명이 재고용되어 기대권이 인정된 사안에서도, 법원은 해당 근로자에게 7건의 사고이력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재고용 거절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보아 청구를 기각했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22. 10. 13. 선고 2021구합81448 판결). 이 판결은 항소기각(서울고등법원 2023. 8. 17. 선고 2022누66738 판결)과 상고기각(대법원 2023. 12. 7. 선고 2023두52130 판결)을 거쳐 확정되었습니다.
Q. 회사가 재고용 요청에 아무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만으로 위법한가요?
무응답 자체가 곧바로 위법한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기간제 근로계약이 종료된 후 사용자가 갱신 거절을 통보하는 경우에는 해고사유의 서면통지를 정한 근로기준법 제27조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21. 10. 28. 선고 2021두45114 판결). 다만 거절의 합리적 이유를 판단할 때는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2025두32673 사건에서 대법원은 회사가 채용 공고 절차나 이력서 제출이 필요하다는 안내를 하지 않고 아무런 회신 없이 근로관계를 종료한 점을 들어, 근로자들이 채용 절차에 응시하지 않았다는 사정이 실제 거절 사유였다고 보이지 않고 설령 그렇더라도 거절의 합리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Q. 단체협약이 실효되면 재고용 기대권도 함께 사라지나요?
당연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2025두32673 사건에서 원심은 재고용 요청의 근거인 2017년 단체협약이 2021년에 실효되었으므로 회사가 이에 응할 의무가 없다고 보았지만, 대법원은 정년 도달 후 촉탁직으로 재고용되리라는 기대권은 회사와의 신뢰관계에 기초한 것이므로 단체협약이 실효되었다는 사유만으로 재고용 요청에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은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단체협약에서 재고용 조항이 삭제되고 별도의 공개 채용절차가 운영되어 온 사안에서는 기대권이 부정되기도 했습니다(광주지방법원 2025. 5. 29. 선고 2024가합54893 판결).
Q. 정년 후 촉탁직으로 일하다 계약만료 통보를 받았습니다. 같은 법리인가요?
다른 법리가 적용됩니다. 정년 도달 시 촉탁직으로 채용될 기대권은 재고용 기대권이고, 촉탁직으로 근무하다 기간이 만료된 경우는 갱신기대권의 문제입니다. 대법원은 정년이 지난 상태에서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일반적인 판단 요소에 더하여 해당 직무에서의 연령에 따른 업무수행 능력 및 작업능률의 저하 정도와 위험성 증대 정도, 해당 사업장에서 정년이 지난 고령자가 근무하는 실태와 계약이 갱신된 사례 등까지 참작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23. 6. 29. 선고 2018두62492 판결). 갱신거절에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에 관한 증명책임은 사용자가 부담합니다(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9두45647 판결).
이 글은 공개된 대법원 판결과 하급심 판결, 그리고 현행 법령을 토대로 일반적인 법리를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인용한 대법원 2026. 8. 12. 선고 2025두32673 판결은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으로 환송한 것이어서, 환송 후 심리 결과에 따라 최종 결론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서울행정법원 2022. 10. 13. 선고 2021구합81448 판결은 항소기각과 상고기각을 거쳐 확정되었으나, 광주지방법원 2025. 5. 29. 선고 2024가합54893 판결은 하급심 판결로 공개된 자료로는 확정 여부가 확인되지 않습니다. 개별 사건의 결론은 취업규칙과 단체협약의 구체적 문언, 해당 사업장의 재고용 운영 실태와 그 기록, 재고용 요청과 회신의 경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