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공 지연은 ‘공사 정지’가 아니다 — 대법원 2026다200798
그 기간은 ‘공사 정지’일까 ‘착공 지연’일까?
목차
공사 도급계약서에 서명하고 착공신고서까지 제출했는데, 정작 발주기관 사정으로 부지가 확보되지 않아 몇 해째 삽도 뜨지 못한다면 수급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공동수급인(이하 ‘X’)은 2009년 말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착공신고서를 제출한 뒤 현장관리인을 계속 배치했지만, 발주기관의 사업부지 확보 지연으로 실제 착공은 2015년에야 이루어졌습니다. X는 그 사이의 1,875일 중 60일을 초과한 1,815일에 대해, 당사자 사이 공사계약의 일반조건 제47조 제4항(지연배상 조항)을 근거로 약 98억 5,776만 원의 지연배상금을 청구했습니다. 제1심은 일부를 인용했지만, 항소심과 대법원은 결론을 달리했습니다. 이 글은 ‘착공이 지연된 단계’에서 위 계약 조항을 끌어다 쓸 수 있는지를 두 단계 법원이 어떻게 판단했는지 정리합니다.
1. 착공이 지연된 기간이 ‘공사가 정지된 경우’에 해당하나요?
결론부터 말하면, 발주기관의 귀책으로 착공이 늦어진 기간은 ‘발주기관의 책임 있는 사유로 공사가 정지된 경우’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기간을 근거로 한 지연배상 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에서 X가 지연배상의 근거로 든 것은, X와 LH가 맺은 도급계약의 ‘공사계약 일반조건 제47조 제4항’이었습니다. 이 조항에는 ‘발주기관의 책임 있는 사유로 공사 정지기간이 60일을 초과한 경우, 발주기관은 그 초과기간에 대하여 잔여 계약금액에 초과일수 1일마다 일정 금리를 곱하여 산출한 금액을 준공대가 지급 시 계약상대자에게 지급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관건은 착공이 지연된 기간을 ‘발주기관의 책임 있는 사유로 공사가 정지된 경우’로 평가할 수 있느냐입니다. 두 단계 법원은 모두 “그렇게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과 원심은 이 계약 조항의 성질을 “발주기관의 책임 있는 사유로 공사가 정지된 경우 그에 따른 계약상대자의 손실을 고려하여 정한 일종의 지체상금 약정”으로 보았습니다(대법원 2009. 7. 23. 선고 2008다82155 판결, 대법원 2021. 12. 10. 선고 2020다300336·300343 판결 등 참조). 수급인이 잔여 공사대금을 그만큼 늦게 지급받게 되는 손해를 보전해 주기 위한 약정으로 이해됩니다(대법원 2020. 1. 9. 선고 2015다230587 판결 참조).
이 계약 조항에 따라 X가 청구한 지연배상금은 다음과 같이 산정되었습니다. 정지기간 1,875일 중 60일 초과분 1,815일, 정지기간 당시 잔여 계약금액 36,374,614,145원, 정지기간 시작 무렵(2010년 9월경) 한국은행 통계월보상 금융기관 대출평균금리 연 5.45%를 적용한 계산입니다.
2. 이 사건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핵심은 ‘착공이 지연된 기간’을 위 계약 조항이 말하는 ‘공사 정지기간’으로 볼 수 있는지였습니다.
대법원 판결에서 정리된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발주기관(LH)은 국도 확·포장 및 지하차도 공사(1공구)의 도급인이고, X는 공동수급인입니다. X는 2009. 12. 9.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2009. 12. 24. 착공신고서를 제출했으나, 발주기관의 사업부지 확보 등 절차 지연으로 장기간 착공이 지연되었습니다.
| 시점 | 내용 |
|---|---|
| 2009. 12. 9. | X와 발주기관(LH) 도급계약 체결(이후 여러 차례 변경) |
| 2009. 12. 24. | X가 착공신고서·현장기술자 지정신고서 등 제출(계약상 착공일) |
| 2010. 7. 6. | [X 주장 정지기간 시작] 발주기관이 사업추진현황 관련 공문 발송 — X는 이를 ‘피고의 책임 있는 사유에 의한 정지지시’로 주장 |
| 2012년경~ | 발주기관이 현장관리방안 통보·착공 준비 취지 공문 수차례 발송 |
| 2015. 8. 10. | 발주기관이 착공 요청 공문 발송 |
| 2015. 8. 23. | [X 주장 정지기간 종료] 실착공 전날 — X는 2010. 7. 6.부터 이 날까지 1,875일을 정지기간으로 주장 |
| 2015. 8. 24. | X 실제 착공 |
| 2021. 6. 30.경 | 공사 완료. 발주기관은 계약상 공사대금 전액 지급 |
X는 위 표에서 음영으로 표시한 2010. 7. 6.(X가 정지지시로 주장하는 공문 발송일)부터 실착공 전날인 2015. 8. 23.까지의 1,875일을 ‘피고의 책임 있는 사유에 의한 공사정지 기간’으로 보고, 위 계약 조항(일반조건 제47조 제4항)에 따른 지연배상금을 청구했습니다. 반면 발주기관은 2015. 8. 24. 이전에는 실질적인 착공이나 공사 수행이 없었고 준비행위만 있었으므로 이 계약 조항이 적용될 수 없다고 다투었습니다.
3. 법원은 공사의 ‘착공’을 언제 인정했나요?
착공신고서 제출이나 현장조사·측량 같은 준비행위만으로는 ‘착공’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수원고등법원 2025나11033 판결은, 이 사건 계약의 일반조건과 특수조건에 ‘착공’에 관한 정의 조항이 없고 ‘착공(着工)’은 그 문언상 공사의 착수를 의미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사건 공사는 가로수·가로등 등 지장물 철거, 상·우·오수관로의 이설과 신설, 통수 후 기존관로 철거 및 터파기, 가도포장·가배수로 설치 등의 공정을 거치는데, 이러한 공정의 진행 내역과 ‘착공’의 문언적 의미를 고려할 때 아무리 넓게 보더라도 최소한 공사상 필요한 지장물의 철거에 이른 시점에서야 ‘착공’이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나아가 이 사건 계약의 일반조건 제17조 제1항과 특수조건 제5조 제4항에는 ‘착공 시’ 또는 ‘착공일로부터 15일 이내’에 현장기술자 지정신고서, 공사공정예정표, 안전·환경 및 품질관리계획서, 착공 전 현장사진, 하도급시행계획서 등을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이는 “착공을 하기 위해 일정한 서류를 제출할 의무가 있다”는 취지일 뿐, 그 서류가 제출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착공’이 있었다는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X가 한 서류 제출, 지장물 조사, 현황측량 등은 본격적인 착공에 이르기 전의 준비행위에 불과하므로, 2015. 8. 24. 이전에 착공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결론입니다.
참고로 법령 차원에서도 비슷한 법리가 확인됩니다. 건축법 제14조 제5항은 “건축신고 후 1년 이내에 공사에 착수하지 아니하면 그 신고의 효력이 없어진다”고 규정하는데, 판례는 기존 시설 철거·벌목·부지 조성·진입로 개설 등 건물 신축의 준비행위를 개시한 것만으로는 ‘공사 착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2015. 2. 12. 선고 2013두10533 판결 참조).
4. ‘착공 지연’과 ‘착공 후 공사 정지’는 왜 다르게 취급되나요?
두 개념은 계약 체계상 구별되며, 제47조 제4항은 지체상금 약정이므로 그 적용범위는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합니다.
원심은 처분문서 해석의 일반 법리를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문언의 객관적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계약 체결의 동기·경위, 당사자가 달성하려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관행 등을 종합해 합리적으로 해석하되, 특히 당사자 일방에게 중대한 책임을 부과하는 내용이라면 문언을 더욱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법리입니다(대법원 2016. 12. 15. 선고 2016다238540 판결 등 참조). 이 사건 계약의 제47조 제4항은 지체상금 약정에 해당하고 계약당사자 일방에게 중대한 책임을 묻는 조항이므로, 그 적용범위 획정에는 엄격한 해석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원심은 이 사건 계약 일반조건 제47조 제1항 각 호가 정한 정지 사유 대부분이 ‘이미 공사가 진행된 상태’를 전제한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 일반조건 제47조 제1항이 정한 정지 사유 | 착공 전 단계 적용 가능성 |
|---|---|
| 제1호 — 공사의 이행이 계약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 | 이행된 부분이 있어야 하므로 착공 전에는 상정하기 어려움 |
| 제2호 — 공사 전부·일부의 안전을 위해 정지가 필요한 경우 | 착공 전이라면 공사 자체의 위험성에 의한 안전 침해 여지가 적음 |
| 제3호 — 제24조에 의한 응급조치의 경우 |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의 긴급조치를 전제한 조항으로 보임 |
또한 이 사건 계약 일반조건 제25조 제3항 제3호에는 ‘착공 지연’과 ‘공사 중단’이 구분되어 규정되어 있었고, 제25조 제1항에는 수급인의 지체상금 발생 요건으로 ‘준공기한 도과’만 정해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발주기관이 일부 공문에서 ‘공사 재개’ 같은 표현을 썼더라도, ‘실착공 지연’·‘실착수’·‘본공사 착수’처럼 실질적 착공이 없었음을 전제한 용어도 함께 사용한 점에 비추어, 당사자들이 이 기간을 제47조 제4항의 ‘정지기간’으로 인식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5. 대법원은 제47조 제4항을 어떻게 해석했나요?
대법원 2026다200798 판결은 원심의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여 상고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대법원은 처분문서 해석 법리(대법원 2016. 12. 15. 선고 2016다238540 판결, 대법원 2023. 12. 21. 선고 2023다228152 판결 등 참조)에 비추어, 이 사건 계약의 제47조 제4항은 도급인의 책임 있는 사유와 현장감독자의 정지 지시를 요건으로 하여 ‘착공 후 공사가 정지된 경우’에 적용되고 ‘착공 자체가 지연된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 이 계약 조항은 발주기관의 귀책으로 공사가 정지된 경우의 손실을 고려한 지체상금 약정이므로, 그 적용요건은 엄격히 해석할 필요가 있다.
- ‘공사정지’, ‘잔여 계약금액’이라는 계약 문언 자체가 공사가 착공되어 일정 부분 진행된 경우를 전제한다.
- 이 사건 계약 일반조건 제47조 제1항 각 호가 정한 사유 대부분이 착공 후 공사정지 상태를 전제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 이 사건 계약 일반조건 제25조 제1항에는 수급인의 지체상금 요건으로 준공기한 도과만 정해져 있을 뿐 착공지연은 요건이 아니므로, 도급인의 귀책으로 착공이 지연되었더라도 도급인이 이 계약 조항에 따른 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형평에 맞는다.
또한 대법원은 ‘착공’ 시점에 관한 원심 판단(지장물 철거에 이른 시점에야 착공이 있었다고 본 것)에도 처분문서 해석에 관한 법리오해가 없다고 보아 제2 상고이유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6. 발주기관 귀책으로 착공이 지연되면 수급인은 어떻게 구제받나요?
착공 전 단계의 손실은 지연배상금이 아니라 계약기간 연장과 계약금액 조정 절차로 다투는 것이 원칙입니다.
두 판결 모두, 위 계약 조항(제47조 제4항)의 적용범위에서 ‘착공 지연’을 배제하더라도 수급인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결과가 초래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그 근거로, 수급인이 이 사건 계약 일반조건 제25조 제3항 제3호, 제26조 제1항·제4항에 따라 계약기간 연장 및 계약금액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따라서 발주기관의 사정으로 착공이 늦어지는 국면에서는, 착공 전 준비절차에서 발생한 비용·손실을 다음 경로로 관리하는 것이 실무적으로 중요합니다.
- 발주기관 귀책 사유와 지연 경위를 공문·회의록 등으로 시점별로 기록·보전
- 계약 일반조건 제25조 제3항 제3호에 따른 계약기간 연장 신청
- 계약 일반조건 제26조 제1항·제4항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간접비 등) 신청
- ‘공사 정지’와 ‘착공 지연’ 중 어느 국면인지에 따라 청구의 법적 근거를 달리 구성
7. 이 판결이 건설·공공계약 실무에 주는 시사점은?
‘발주기관 귀책 = 자동으로 지연배상금’이라는 도식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어느 조항을 근거로 무엇을 청구하는지가 결론을 좌우합니다.
이 사건은 발주기관의 사업부지 확보 지연으로 착공이 5년 이상 미뤄졌고 그 사이 잔여 계약금액이 매우 컸기 때문에, 위 계약 조항을 적용하면 오히려 ‘공사가 진행되다 중단된 경우’보다 더 큰 금액이 산정되는 구조적 불균형이 드러난 사례였습니다. 원심은 이러한 산정 구조의 불합리까지 지적하며 착공 지연에는 이 계약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았고, 대법원도 이를 수긍했습니다.
실무적으로는 ① 계약상 ‘착공’의 의미와 시점을 다투는 쟁점, ② 발주기관의 행위가 ‘정지지시’에 해당하는지, ③ 지체상금·지연배상금 약정을 엄격해석할 것인지의 세 축을 분리해 검토해야 합니다. 법무법인 아틀라스는 공공·민간 도급계약을 둘러싼 분쟁에서 계약문서의 문언과 체계, 정지·지연 국면의 구분, 청구 근거의 구성에 관한 자문과 소송을 다수 수행해 왔습니다.
8. 자주 묻는 질문(FAQ)
Q. 법원은 공사의 ‘착공’을 언제 인정하나요?
수원고등법원 2025나11033 판결은 착공신고서·현장기술자 지정신고서 제출, 지장물 조사·현황측량 등은 준비행위에 불과하고, 아무리 넓게 보더라도 최소한 공사상 필요한 지장물의 철거에 이른 시점에서야 ‘착공’이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Q. 착공 관련 서류를 제출하면 착공한 것으로 인정되나요?
아닙니다. 이 사건 계약 일반조건 제17조 제1항·특수조건 제5조 제4항의 서류 제출 조항은 착공을 위한 의무를 정한 것일 뿐, 서류가 제출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착공’이 있었다는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Q. 왜 ‘착공 지연’과 ‘착공 후 공사 정지’를 다르게 취급하나요?
이 계약 조항은 일종의 지체상금 약정으로 상대방에게 중대한 책임을 부과하므로 엄격하게 해석해야 합니다(대법원 2016. 12. 15. 선고 2016다238540 판결 등 참조). ‘공사정지’, ‘잔여 계약금액’이라는 계약 문언은 공사가 이미 착공되어 일정 부분 진행된 상태를 전제합니다.
Q. 착공 지연으로 인한 손실은 어떤 절차로 구제받나요?
이 사건 계약 일반조건 제25조 제3항 제3호에 따른 계약기간 연장 신청, 제26조 제1항·제4항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간접비 등) 신청이 주된 경로입니다. 발주기관의 귀책 사유와 지연 경위를 공문·회의록 등으로 시점별로 기록·보전해 두는 것이 선행조건입니다.
Q. 이 판결은 공공계약 실무에 어떤 의미가 있나요?
발주기관 사정으로 착공이 장기간 지연될 수 있는 공공 토목·건설사업에서, 수급인은 착공 전 단계의 손실을 지연배상금이 아니라 계약기간 연장·계약금액 조정 절차로 다투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사례입니다.
본 글은 공개된 판결(수원고등법원 2025나11033, 대법원 2026다200798)을 토대로 한 일반적 정보 제공이며, 구체적 사안에 대한 법률자문이 아닙니다. 또한 본문의 ‘공사계약 일반조건’은 법령이 아니라 해당 사건 당사자가 체결한 계약문서의 조항이므로, 개별 공사계약의 문언과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제 분쟁에 관하여는 법무법인 아틀라스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